옐라딤예슈아는 예수님의 아이들이라는 의미의 히브리어입니다. 본래 옐라딤 례슈아 (Yeladim L'Yeshua)라고 발음해야 하는데 편의를 위해 그저 옐라딤예슈아라고 합니다. 모든이교회에서 옐라딤예슈아란 갓난 아기부터 초등학교 학생까지의 어린이들을 말합니다. 모든이교회서는 만 4세부터 성경읽기를 합니다. 한글을 모르는 어린이들은 오디오 성경으로 듣기부터 합니다. 이후 한글을 깨우치면 '야드'라는 도구를 사용해서 한 자 한 자 짚어가며 성경 읽기를 합니다. 성경읽기는 토라의 경우 유대인의 파라샤트 시스템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느비임, 케투빔, 신약은 모든이교회의 파라샤트 시스템을 사용합니다. 느비임과 케투빔은 격년으로 교대하며 읽습니다. 유대력이 홀수면 느비임을 읽고 짝수면 케투빔을 읽는 식입니다. 옐라딤예슈아는 토라학교, 주일학교, 국토순례 등을 통해 다양한 공부를 합니다.
옐라딤예슈아의 궁극적인 목표는 경건한 신학자 양성입니다. 100명의 어린이들 가운데 1명은 경건한 신학자가 되게 하고 나머지 99명은 경건한 신앙인이 되자는 것이지요. 경건한 신앙인은 당연히 경건한 신학자를 도와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우리 주님의 지상최대의 명령을 실천할 수 있으니까요. 옐라딤예슈아는 성경공부와 함께 학교공부도 잘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지덕체의 훈련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산행이나 여행을 즐겨 합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들을 즐길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아이들 어떻게 키울까...
참고: 모든이베이트는 아이들을 '옐라딤 예슈아'라 부른다. 예수님의 어린이들이란 의미의 히브리어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 가고 있는 시대를 이른바 포스트 모더니즘(Post Modernism) 또는 포스트 크리스채니티(Post Christianity)의 시대라고 한다. 사무엘 헌팅턴 식의 '문명 충돌' 개념에서 보면 포스트 크리스채니티는 세계 평화를 위한 지고선의 가치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유대인들로 치면 3500년이요, 기독교인들로 치더라도 2000년이나 되는 장구한 세월 동안 성경(이하 이해하기 쉽도록 토라와 복음이라 함)을 상고하고 그 상고한 바를 실천해 온 수 많은 사람의 역사를 우리는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세속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토라와 복음이 말하는 바를 실천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특히 한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교육으로 토라와 복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해도 그것을 실천하기 어렵다고 푸념을 한다. 한국이란 사회가 본디 이방적이고 세속적인 경향이 너무 집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교회 안에서 조차 토라와 복음의 중요한 메시지들이 간과되고 적당히 처리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요청되는 것은 토라와 복음의 메시지를 실존적으로 또는 체험적으로 이해해서 우리의 구체적인 삶의 영역에서 실천을 하는 샘플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토라와 복음을 정직하게 이해하고, 그것을 가능한 범위에서 삶에 적용하도록 노력 해야 한다. 비록 한국 교회의 세속적 경향성이 그 노력을 우공이산(愚公移山)처럼 생각하게 만들지라도...
1. 회복의 문제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받아들이는 유대인들(메시아닉 쥬)은 토라 뿐만 아니라 복음을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 훌륭한 신학적인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 인구 수가 적고 유대인이라는 묘한 자긍심 때문에 율법의 문제를 적절히 해결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기는 하지만 그 자체가 우리에게는 좋은 교육 자료이다. 그리고 이들의 언어들 가운데 토라와 복음을 설명하면서 특별히 많이 사용하고 있는 '회복'이란 단어는 우리의 주의를 끌기에 충분하다. '개혁(reformation)'이 아니고 '회복(restoration)'이란 것이다. 그들은 뿌리가 다르면 개혁을 해 봤자 소용이 없다고 주장한다. 헤브라이즘을 헬레니즘으로 아무리 해석해 봤자 헛일이라는 것이다. 이 말은 기독교 역사의 질곡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참으로 도전적인 언사이다.
2. 상황점검
회복의 관점에서 보면 토라와 복음을 제대로 배우기 위해서는 어리면 어릴수록 좋은 것 같다. 그러므로 어릴수록 더욱 더 효과적이라 볼 수 있다. 토라와 복음은 언어와 마찬가지로 삶을 통해 형성되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이교회는 태아부터 초등학교 학생들에 해당하는 어린이들을 '옐라딤 예슈아' 즉 '예수님의 아이들'이라 부르면서 그들에게 토라와 복음으로 신앙 교육을 시키며 그들을 통한 회복을 기대하고 있다. 무엇보다 먼저 우리는 토라와 복음을 옐라딤 예슈아에게 가르치기 위해서 이들을 위한 특별한 토라 파라샤트와 복음서 파라샤트를 개발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을 주일 성경공부를 통해서 들려 주고 있다.
그런데, 교회적 과제인 회복의 첫걸음으로서 옐라딤 예슈아 교육은 처음부터 만만치 않은 저항에 부딛혔다. 교회학교에 대한 교인들의 일반적인 인식은 부끄러울 정도였다. 교회학교 교육은 그 부모들의 인식의 세계에서는 정말로 하찮은 것이었다. 부모들이 생각하는 교육의 모든 순위에서 꼴찌였던 것이다. 물론 대한민국은 기독교의 나라가 아니고 그 영성의 바탕이 무속적이다. 언필칭 그리스도인이라 하는 사람들의 수보다 그리스도인임을 부인하는 사람들의 수가 이 적어도 5배는 많다. 모든이교회라 해도 옐라딤 예슈아의 부모가 비그리스도인인 경우는 그리스도인인 경우의 5배가 되었던 것이다. 비그리스도인 부모를 둔 어린이들은 성경공부커녕 주일 예배에도 참석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주 5일 근무의 바람은 주말에 어린이들을 관광지로 향하는 차 속에 넣게 했다.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서는 소위 공부에 지장을 주지 않으려고 주일에 행사를 갖는데 그리스도인 부모들조차 이것을 불가피하다고 생각하는 추세다.
한국에서는 자녀 교육의 모든 것이 대학 입시에 초점이 맞추어 진다. 대학 입학 시험에 성공하기 위해서 부모들은 아이들이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엄청난 재정 지출을 감수한다. 하지만 대학 입시에서 성공할 수 있는 확률은, 즉 원하는 대학 원하는 학과에 들어갈 수 있는 확률은 1% 미만이다. 99% 이상의 아이들은 확률 1%를 거머쥐는 아이들의 들러리 역할을 할 뿐이라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 부모들조차 자기 자녀들은 1%에 들어갈 수 있다는 왜곡된 희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소위 대입을 최고 선으로 여기는 교육의 허접한 결과가 예견됨에도 불구하고 교육적 주체성이 없는 부모들은 그리스도인들까지도 자녀들의 신앙교육에 심각한 관심을 갖지 않는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 부모들은 세속적 가치관에 대하여 의심을 품는다고 말은 하지만 정작 자녀들의 문제에 관한 한 비그리스도인과 다름없는 결정을 하고 만다. 부모들 자신이 신앙교육을 제대로 받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모든이교회의 성인 교인들 가운데 80% 이상이 그들의 부모가 그리스도인들이 아니다.
3. 타개책은 있다!
모든이교회는 옐라딤 예슈아 운영을 보다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 중대한 결단을 해야 하는 싯점에 이르렀다. 아이들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부모가 토라와 복음에 대하여 분명한 이해가 없다면 신앙교육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런 전제 아래 모든 것을 재검토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옐라딤 예슈아의 부모들이 무엇보다 먼저 토라와 복음에 대한 상식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이루어 지지 않으면 신앙교육은 결국 불가능하다. 유대인의 세계에서나 기독교인의 세계에서나 신앙 교육은 본디 부모들의 몫이다. 그러므로 교회가 제아무리 열심을 낸다고 해도 부모들의 협력이 없으면 신앙 교육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모든이교회는 부모들의 협력이 없으면 그 부모 밑에서 자라나고 있는 아이들은 신앙 교육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한국교회는 교육의 차원이 아니라 전도의 차원에서 교회학교를 운영해 왔다. 그런데 전도 차원의 교회학교가 이제 위기에 봉착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들 가운데 1%만 청년부나 대학부에 남는다는 통계가 벌써 10년 전부터 우리를 압박해 오고 있다. 가르쳐 두면 언젠가는... 이라는 사고는 이제 포스트 크리스채니티가 구가되는 사회에서 나이브하고 로맨틱 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회복에 대한 관심은 아름답다고 확신한다.
아이들이 토라와 복음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게 돕는 것은 교회와 부모가 함께 해야 하는데, 부모가 먼저 해야 한다. 부모의 적극적인 협력이 없으면 교회 교육은 불가능하다. 모든이교회는 주일마다 토라교실과 복음교실을 열고 성인들을 대상으로 토라와 복음의 내용을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토요일에는 토요 만찬인 '에레브 샤밭'과 주일 만찬인 '하브달라'를 통해서 가장이 가정에서 아이들과 함께 토라와 복음의 내용을 숙지하도록 도와 준다. 하지만 아직 참여자가 미미한 실정이다. 부모가 아이들의 구체적인 신앙교육에 관심을 갖기 시작 한다면 교회는 비로소 구체적인 신앙교육에 들어 갈 수 있다. 신앙교육은 무엇보다 먼저 말하기 부터 시작한다. 이 교육은 4살부터 시작된다. 우리는 '예수님의 어린이는 이렇게 말해요'라는 제목으로 교재를 만들었다. 옐라딤 예슈아는 이것을 외워야 하고 교회와 가정에서는 수시로 그 실천을 체크 한다.
첫째, 나보다 나이가 많은 분이면 "먼저 말씀하세요!"
둘째, 다른 사람들이 말하고 있으면 끼어들지 않아요.
셋째, 말하기 전에 먼저 무엇을 말할까 생각해요.
넷째, 놀랬어도 아무렇게나 말하지 않아요.
다섯째, 간단하고 물어 보고 확실하게 대답해요.
여섯째, 처음 할 말은 처음에 하고 나중 할 말은 나중에 해요.
일곱째, 잘 알지 못하고 말한 것은 잘 못 했다고 해요.
이후에 우리는 아이들에게 본격적으로 토라와 복음을 가르친다. 그 방법은 다음과 같다.
첫째,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도록 한다. 적어도 유치원을 졸업할 때까지는 토라 파라샤트와 복음서 파라샤트를 모두 읽게 한다. 그리고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신구약 성경을 적어도 1회독 할 수 있게 한다. 아울러 유대 역사와 기독교 역사를 공부하게 한다. 둘째, 사람을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따지지 않고 차별 없이 대하게 한다. 셋째, 어떤 판단을 할 때는 객관적으로 공정한 지를 생각하게 한다. 넷째, 어떤 문제라 해도 영웅심 때문에 특이한 판단을 하지 않게 한다. 다섯째, 남의 말은 직접 듣는 것을 선호하도록 한다. 그래서 외국인의 말도 통역없이 듣도록 한다. 이를 위해 여러 외국어들을 숙달하게 한다. 성경을 제대로 읽도록 어려서부터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가르친다. 영어는 기본이다. 이를 위해 옐라딤 예슈아 방과후 학교를 운영한다. 여섯째, 돈 문제는 다른 어떤 문제보다 3배는 더 깊이 생각하게 한다. 돈의 중요성과 절약성, 그리고 가치있는 돈 사용에 대해 구체적으로 가르친다. 가치있는 돈 사용과 관련하여 사람의 생명 문제는 돈 문제보다 7배는 더 깊이 생각하도록 가르친다.일곱째, 사람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게 한다. 다른 사람과 관계를 끊어야 할 때는 하룻 밤을 자면서 깊이 생각한 후에 결정하게 한다.
4. 옐라딤 예슈아 학교 운영
모든이교회가 실천한 바에 따르면 주일학교만 가지고 아이들을 효과적으로 신앙교육을 시킬 수 없었다. 모든이교회는 약 1년 동안 학령 전 아이들을 위해서 유치원을, 초등학교 학생들을 위해서 방과후 학교를 운영했었다. 매일 교육을 실시하는 이런 학교 프로그램을 통해서 신앙교육의 어떤 가능성을 보았다. 그리하여 여건이 갖추어 지는 대로 유치원과 방과후 학교를 다시 운영할 생각이다. 한국실정에 따르면 '어린이 집'이 될 것이다. 옐라딤 예슈아 어린이 집은 유치원 정교사 자격을 가진 교사들이 교육을 담당한다. 물론 이들은 모든이교회에서 토라와 복음에 대하여 공부한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토라와 복음을 바탕으로 한 신앙교육과 함께 일반 유치원 교육을 실시할 것이다. 아울러 초등학교 학생들을 위해서 방과후 학교도 운영할 것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기획은 담당자가 할 것이다.
5. 경건한 신학자 양성
모든이교회 신앙교육의 목적은 경건한 신학자 양성이다. 우리는 100명의 아이들 가운데서 적어도 1명의 경건한 신학자가 양성되기를 기도하고 있다. 99명은 경건한 신앙인으로 경건한 신학자를 재정적으로 도와 주기를 바란다. 옐라딤 예슈아에서 가능성이 보이는 학생들은 중고등학교 시절에 특별 프로그램을 통해서 경건한 신학자로서의 자질을 함양할 것이다. 대학 진학 후에는 경건한 신학자 후보생으로 선정하여 모든이교회가 교회 재정으로 특별 지원 할 것이다. 경건한 신학자 양성을 위해서 우리는 예루살렘에 모든이베이트를 만들 생각을 하고 있다. 그리고 모든이교회의 옐라딤 예슈아, 십대들의 교회 등에서 히브리어와 영어에 친숙해 질 수 있게 할 것이다. 모든이교회는 그 멤버를 선교사로 파송하고 지원하듯, 신학자도 그 멤버들 가운데서 선택하여 키울 것이다. 이것은 우리 모든이교회의 선교와 교육의 인사 원칙이다. 사람을 키우지 않는 교회는 모든 면에서 아마튜어의 면모를 보이며 모든 것을 돈으로만 해결하려고 한다. 이것은 참된 교회의 모습이 아니다. 그러므로 확신에 찬 어조로 우리에게 결국 돈이라고 말하지 말라! 그리고 우리에게 아무나 도우며 구색을 맞추라 하지 말라! 우리에게 아이들을 보내 주어 하나님의 일꾼으로 만들게 하라. modenee